사진가 김재훈에게 집은 궁극적인 안식처를 향한 여정의 한순간에 불과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노정은 그가 자신을 발견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사진가 김재훈은 지난해 5월 구 러시아 공사관 근처 정동길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삼면이 통유리인 거실 창밖으로 덕수궁 돌담길과 시청역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장 가까이 보이는 건 지난해 말 복원 공사를 완료한 구 러시아 공사관 전망탑이다. 6·25 전쟁 당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된 공사관 터에 오도카니 남은 르네상스 양식의 하얀 탑은 러시아인 사바친(A.I. Sabatin)이 1890년에 설계한 것이다. “저 길은 고종의 길이에요. 아관파천 이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과 덕수궁을 오갈 때 다니던 길이죠.” 역사적 과거를 소환하는 로맨틱한 풍경만으로 이 집의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김재훈이 이 집을 선택한 건 독특한 구조 때문이다. “집 안에서 건물 외벽이 보이고 구조물이 노출돼 있습니다. 보통은 창밖으로 맞은편 집이나 건물이 보이는 게 일반적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