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 연애소설] 정세랑의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연애도 일종의 판타지라면, 마음껏 기대하고 상상하는 쪽을 택하겠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모호한 사랑의 감각을 의미심장하게 곱씹고 더듬는 김기태, 김초엽, 민지형, 박상영, 원소윤, 장강명, 정세랑, 천선란 작가의 초단편소설처럼.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Pexels가위눌림에 대해서는 이미 과학적으로 밝혀져 있다는 것을 안다. 렘수면 상태에서 의식은 깨어났는데 몸은 깨어나지 못했을 때 불쾌한 느낌과 함께 환각을 보기도 한다고 말이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가위눌리는 중에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열한 살에서 열여섯 살까지 내내 가위눌렸다. 신경계 관련 치료를 받는 중이라 그랬던 것인지, 약물 부작용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온다 싶을 때 뒤척여보아도 속절없이 마비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누워 있는 방의 평범한 풍경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가위눌림이 거듭될수록 문밖에서 무언가가 다가왔다. 어둡고 이글거리고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