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연의 시집 <당근밭 걷기>(문학동네시인선, 2024)를 읽는 내내 나는 무럭무럭 자라나는 식물의 생동을 느낀다. 그 자신이 돌 모양의 초인 줄도 모르고, 녹아내리는 줄도 모르고 참아내는 돌의 우직함, 초의 연약함, 그러한 모양을 한 사랑이라는 것을 생각한다(<간섭>). ‘시간이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쫀득해질’(<반건조 살구>) 축조하는 시간의 힘을 기꺼이 믿어보고 싶어진다. 슬픔의 순간에도, 슬퍼지려 할 때조차도 시인의 시선에서 사는 일은 기어코 약동과 진동으로 뭉근하게 달아오를 것이다. 그 활력에 기대고 싶어지는 것이다.
‘무엇을 심어볼까. 그게 뭐든 무해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눈을 감았다 뜨면, 무언가 자라기 시작하고. 나는 기르는 사람이 된다.’ -<당근밭 걷기> 중
Getty Images 안희연, ‘당근밭 걷기'(문학동네시인선, 2024)자라는 것, 그것을 기르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