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천을 묶고 실로 꿰어 만들어내는 조각, 즉 ‘부드러운 조각’을 좋아합니다. 예컨대 루이즈 부르주아 같은 여성 작가들이 텍스타일과 바느질 등을 활용한 부드러운 조각 작업을 선보이곤 했죠. 일상적이며 여성적인 작업은 바로 그 이유로 주류 미술계의 인정을 온전히 받는 데까지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습니다. 예술과 가사 노동, 공예와 미술의 모든 특성을 두루 겸비했다는 태생적 장점이 현대미술계에서 오히려 약점이 된 거죠. 그런 면에서 또 다른 예로,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린 섬유공예가 이신자 작가의 개인전 연계 강연 제목이 ‘시대를 직조한 섬유공예가’였던 건 우연이 아닌 듯하군요.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서 만난 셰일라 힉스의 전시(9월 8일까지)가 반가웠던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1950년대 중반부터 순수 예술과 응용 예술의 장벽을 허물어온 그녀가 선보여온 일명 ‘텍스타일 아트’는 묵묵히 자기 역할을 다하며 가치 있는 작업을 탄생시키기 위해 고투한 ‘여성 미술사’의 증거와 같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