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이 가면 밤이 온다. 인류의 앞날을 근심하는 학자들은 언젠가 지구가 모든 균형을 잃어 한쪽은 내내 밤만 계속되고 반대편은 낮만 있을 거란 불길한 예언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설이 그렇듯 현실성이 별로 없으니(지금으로써는), 모르는 행성에서 낯선 언어로 무형의 광물에 관해 말하는 것 같을 뿐, 낮이 밤으로 이어지는 평범하지만 가슴 뛰는 루틴이 없어진단 건 믿을 수 없다. 하긴, 트롬쇠와 함메르페스트의 백야는 서정의 끝일 테니 거기서라면 밤뿐이어도 좋겠지? 그렇더라도 노르웨이는 너무 멀다. 한때 지독한 불면증 탓에 밤을 증오하고, 기어코 다시 오는 아침도 원망했다. 그때의 밤은 쓸데없는 생각, 난데없는 생각, 부질없는 생각의 향연, 화내고 후회하고 다시 화내고 더욱 후회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호두와 생양파, 라벤더와 구절초 베개는 어쩌면 그렇게 몽땅 무용지물. 불면의 밤은 크레이프처럼 겹겹이 쌓인 채 낮을 더럽히고 생활을 망쳤다. 그러던 어느 날, 왜 이러고 사나 의문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