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말할 순 없듯, 전부 끌어안고 살 순 없다. 어떤 물건은 잊히고 어떤 물건은 사라지고 어떤 물건은 남는다. 몇은 버리기로 했다.
1. 셔츠
앤 드뮐미스터의 블랙 셔츠. 이걸 입고 한 짓이 너무 많아서 잘 빨지도 않았다. 어떤 날은 입고도 잔다. 셔츠 밑단을 꺼내 안경을 닦아주던 기억이 선명하지만, 이젠 ‘어쩔 수 없다’는 마음만 든다.
2. 팬츠
런던 도버 스트릿 마켓 문 앞에서 레이 가와쿠보를 우연히 만났다. 아방가르드의 성전에서 그곳의 여왕으로부터 “당신 바지 핏이 마음에 들어요.” 란 얘길 들었다. 몹시 흡족한 기분이 들면서, 최신 유행도 중요하고 세련된 것도 좋지만 룩에는 뭔가 재미있는 부분이 필요하다는 그녀의 조언이 번쩍 기억났다. 원래도 팬츠를 다소 짧게 입었으나 좀 더 ‘게릴라적이면서 리버럴하게’ 시도하기로 하고 아제딘 알라이아와 부디카 사이에서 꼼 데 가르송 남성용 팬츠를 한 벌 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누군가에겐 무척 어울리겠으나 내게는 이도저도 아닌 그저 오리무중.